
2001년 3월 23일. 남태평양 상공.
먹먹한 침묵 속에서 한 시대를 책임졌던 우주정거장 '미르(Mir)'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1986년 소련의 야심 찬 프로젝트로 우주로 쏘아 올려졌던 미르는 어느덧 낡고 지친 몸이 되어 있었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구 주위를 돌며 인류의 꿈과 희망을 안고 있던 그였다.
"미르, 이제 이별이야."
우주 관제센터의 조용한 음성에 담긴 아쉬움이 지구 곳곳의 방송으로 퍼져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은 TV 화면 앞에서 숨을 죽이고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르는 러시아어로 '평화' 또는 '세계'를 의미한다. 냉전 시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미르는 그 이름답게 전 세계 28개국의 우주인들에게 '평화로운 집'이자 우주에서의 '작은 세계'가 되어 주었다. 미르에 머물며 다양한 과학 실험을 수행한 우주인들 덕분에 우주 생물학, 의학, 물리학 등 많은 분야에서 값진 성과가 쌓였다.
하지만 미르는 점점 늙어갔다.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모듈들은 시간이 지나며 빈번한 고장을 일으켰고, 우주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미 새로운 국제 협력 프로젝트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이 가동된 이상, 노후한 미르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마침내, 미르는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진입했다. 미르가 지구 대기와 충돌하며 만들어낸 화려한 불꽃이 남태평양 밤하늘을 수놓았다. 수많은 파편들은 대기권에서 사라졌고, 일부는 바다로 떨어져 미르의 마지막 흔적이 되었다.

세계의 과학자들과 우주인들, 그리고 미르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순간을 눈물로 지켜봤다. 미르는 단지 우주에 떠 있던 정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인류의 끝없는 도전을 담은 이야기였다.
미르는 이제 없지만, 우주를 향한 인류의 여정은 계속된다. 미르가 남긴 수많은 연구와 기억들이 더 먼 우주로 향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미르를 기억한다. 우주에 남긴 평화의 흔적을 말이다.